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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툭 오는 거다. 툭; 가지산 운문사; 신불산 홍익태권도 수련기 2

by 이야기 나그네 2024.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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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신불산 가는 길에 가지산을 지나게 되었다. 한참 산을 타던 40대 무렵에는 운문터널이 없었다.
기차를 타고 경산 내려가는 도중에 비가 내리기도 했는데 막상 경산에 도착하자 날씨가 타는 듯이 더웠다.





운문터널로 가는 계곡은 이미 차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건너 내다 보이는 계곡은 물이 보이지 않았다.
계곡에 물이 흐르지 않아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것은 그만큼 도시를 떠나 더위를 피하고자 하는 마음일 거다.

운문산 정상 바로 못 미쳐서 아랫재가 나온다.
여기서 운문사 방향 사리암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나오는데 사리암 방향에서 올라오는 길은 그 당시 폐쇄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이 등산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크게 기대하지 않고 내려갔다.
그런데 폭포를 몇 개 본 것으로 기억난다.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나 위쪽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나서 가 보았더니 커다란 두레박으로 물을 쏟아붓는 듯한 그 웅장함에 깜짝 놀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곳에 이런 위용을 갖춘 폭포가 있을 줄이야...

총장님은 스승님 눈치를 보면서 사람 공부를 했다고 하신다.
덕분에 이제는 척하면 척 알아듣고 눈치챌 정도가 되셨다고...

클라이밍광장 아침 6시 무렵 처음 관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내 소개를 했다.
아내가 관장님께 태권도를 지도받았고 1단을 땄다.

스승님께서 홍익지도자는 재미있게 교육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관장님께서는 그것을 갖추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관장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홍익 태권도 지도를 맡으라고 하시면서 스승님은 세 가지 하명을 하셨다고 한다.
첫째 각을 세우지 마라.
그리고 재미있게 하라.
마지막으로 잘 되는 것도 너의 탓이고 잘못되는 것도 너의 탓이다.

신불산 홍류폭포는 이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줄기차게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전날 저녁 가든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우리 테이블에만 빨간 장미 조화 세 송이가 화병에 놓여 있었다.
우리 일행 네 명은 그 꽃이 어떤 복을 주리라는 하나의 시그널로 여기고 한껏 행복한 표정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모두 헤어지고 카톡으로 수십 장의 사진이 날아 들어왔다.
폭포 아래에서 나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가득했다.
언제 찍으셨는지 많이도 찍으셨다.
구도나 배경 각도 이런 거는 완전 뒤로 한채 무조건 나의 모습을 담으신 거다.

대구에서 오신 연구원님은 혼자 셀카를 찍으시길래 내가 사진을 찍어 드렸다.
그러고 나서 지인분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셨다.
찰칵.
그랬더니 이제는 나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지인분이 사진을 찍어 주셨다.
그다음은 날 더러 혼자 폭포 아래에서 하트를 취하라고 하신다.

원래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아내랑 살면서 술 담배를 끊었다.
첫날 기분이 너무 좋아서 소맥을 몇 잔 했다.
그렇게 마신 소주가 반 병.
대학생 때 주량이 반 병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11시 경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좀 멀미가 났다.
기분이 좋지 않다.
장 트러블도 약간 있고.
어제도 그런 증상이 조금 있었는데 역시 술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결론이다.

경산에서 음성까지 입석이다.
그런데 조치원까지는 앉아서 왔다.
경산에서 탄 기차칸 하나 전체가 정해진 좌석이 없고 먼저 앉으면 임자다.

경산역에서 기차에 오르는데 한 여성 외국인이 트렁크를 옮기면서 옆으로 쓰러질 뻔 했다.
그 옆에는 더 큰 트렁크가 있었다.
이제 곧 열차 문이 닫힐 텐데.
내리시냐고 물으니 내린다고 한다.
얼른 무거운 트렁크를 내려 주었는데 가만히 보니 그 여성 옆에 키 큰 남자 한 명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게 보인다.

그 여성이 옆에 있는 남성에게
"너는 뭐 하냐 저분이 트렁크를 내리게 하고."
대강 이런 내용인 것 같았다.
중국어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월요일 출근길에는 옆에 달리는 차가 오른쪽 주유 뚜껑이 열려 있었다.
마침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뀌고 정차한 짧은 시간에 차 문을 열고 내려가서 차주에게 그 사실을 알려 드렸다.
여성분이셨는데 곧장 내려서 주유 뚜껑을 잠그고 출발했다.
좌회전하기 전에 감사의 쌍깜빡이를 넣고 가시더라.

내가 맑히려고 하면서 하는 것은 절대 맑힐 수 없고 내가 깨달아야겠다고 하면서 하는 것은 깨달을 수가 없다는 말씀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깨달음은 툭 오는 것이다. 툭.
너의 상태에 따라서 툭 온다.

나의 상태.
깨끗한 상태.
의도가 개입하지 않은 맑은 상태.
그 맑음의 농도가 같은 주파수가 연결되는 상태.


무의식-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2:50
완전 유체이탈을 해서 완전 차원계에 들어가서 일어나는 일은 의식이 없는 겁니다. 의식이 없는데 돌아와서 의식을 할 때 이것이 어느 정도 감지를 하는 거죠.
육신에 돌아와야지만 감지하지 육신을 빠져나가서는 의식이 없는 겁니다. 그건 무의식이죠.
무의식이고, 그런 속에서 차원계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은 차원계에 일어나는 일이지 요 우리가 3차원에 육신하고 같이 일어나는 일은 아니거든.
그런 것들이 가능한가 인데 가능합니다. 가능하다는 거죠.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내가 이 지금 탁한 곳에 와 가지고도 네 영혼의 노력이 얼마나 노력을 해서 너를 깨끗이 운동할 수 있게 만드느냐? 에너지가, 원소가 깨끗이 운동할 수 있도록 만드느냐? 깨끗하면 탁한 거 하고 분리할 수 있거든, 깨끗하면.
깨끗한 선이 어디냐 라는 거죠. 너를 깨끗이 하는데 70% 넘어서면 오게 탁한 거 하고 분리될 수 있어요. 3:7의 법칙 때문에. 그러니까 이 분리가 되면은 뜰 수도 있고 섞일 수도 있고 자유자재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원소의 힘이 그렇다 이 말이에요.
원소, 우리 원래 영혼들은 원소인데 지금은 이름을 달리해 놓은 것이 탁한데 범벅이 돼가 있기 때문에 이름을 달리 한 거예요.
그래서 영혼신이라고 하는 거예요. 영혼. 혼합했다.
혼합신 이게 영혼신이에요. 혼합신, 탁한 거 하고 혼합돼 가 있는 거예요 지금.
모든 거 혼합된 갖고 있는 그런 이름을 뭐라고 붙일까 해서 그게 영혼신이에요.
영과 모든 혼합된 신, 그래 갖고 영혼, 혼합된 신 요렇게 부르는 거예요.
말 그대로 이름 그대로 하자면.
근데 요것이 수행 속에서 이야기한다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맑아질 것인가?
아주 맑게 가고 있는 척도가 어떻게 해야지 맑아질 것이냐?
요런 거는 나 자신의 못남을 아주 그 반성하고 이 걸 잡아가는 가운데서 이 걸 끊임없이 반성하고 잡아가는 그것이 이 흔들리지 않고 가니깐 다시 출렁대지도 않으면 요것이 맑아져 버렸을 때 이 때는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디에도 경계가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경계가 없어지니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갈 수 있어지는 이런 것들이 원소들이 자기가 알아서 주파수 대로 찾아간다.
나는 영혼, 이 자체가 우주의 원소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 있다. 열고 있다. 내가 항상 할 수 있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인데 탁한 이 부분이 어느 만큼 해소되느냐? 여기에 따라서 어떠한 만큼 자유로워지는가 요런 것들이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우주의 근본에 접한다라는 것은 내가 우주에 맞아야 된다라는 거죠.
저게 육신이 아니고 영혼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거게 맞아줘야 그래야지 자유로워질 수 있고 시공을 초월할 수 있고 이게 다 넘어선다는 거죠.
일시무시일을 넘어선다는 거죠.
시공을 초월한다. 그런 것들이 장막이 있는 것이 전부 다 물질인데 물질을 넘어선다는 것은 원래 물질을 넘어서게끔 되어 있는 비물질 에너지이기 때문에 우리 원소는 비물질 에너지이기에 물질을 넘어서게 돼 있는데 여기서 탁한 부분 때문에 못 넘어서는 거죠.
그래서 그걸 맑히는 거예요.
맑히는 게 내가 이걸 맑힌다라 하고 맑히는 자는 절대 맑힐 수 없다.
내가 깨달아야겠다고 하면서 하는 자는 깨달을 수 없는 것처럼.
깨달음은 툭 오는 것이다, 툭.
너의 상태에 따라서 툭 온다.
그러니까 내가 그러잖아요. 깨달음에는 2가지가 있다라고.
네 모순을 깨닫는 거 하고 내가 인제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 말이죠.
내 삶을 깨닫는다.
모순을 깨닫고 전부 다 만져서 정리하고 보면 인제 내가 삶이 어떤 삶을 살아야 된다라는 깨달음이 온다라는 거죠. 그것이 공적으로 살고 공인으로 살고 내 갊을 불사라서 늘리 사회와 사람을 이롭게 하고 나는 홀연히 가는 걸 깨달았다 이 말이죠. 내 삶을 사는 게 아니고 타인의 삶을 사는 게 내 삶이었다는 거죠...

그것이 공인 삶이고 그것이 공도사상으로 내가 스스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상대를 위해서 살려고 그래도 상대를 위해서 살 수 있는 이 기획이 일어나는 만큼, 할 수 있는 그만큼 하는 거예요.
그걸 다 하면 되는 거예요.
불사르는 것은 자연에 따라서 스스로 가면 되는데 욕심낼 게 없다.

[천공 정법] [바칼로레아] 1254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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